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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높이 - 전람회
Thursday, June 25, 2009 02:29:19 PM PDT
난 힘들때면 너의 생각을 하지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또 같은 삶 속에서
난 어느새 지쳐 버렸는지

다시 만날 순 없어도 알 수 없는 힘이 되어준
너의 기억이 항상 내 곁에서 따뜻한 위로가 되지

떠나가던 그 저녁에

나는 몹시 날고 싶었지
별이 맑은 하늘을 향해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그런 밤의 하늘 속으로
하늘로 높이 솟구쳐 날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휴머니즘
Tuesday, June 2, 2009 05:59:02 PM PDT
요즘 영화들 속에서 볼수 있는 흔한 주제중 하나는 휴머니즘(인본주의 사상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니까 휴머니즘이라고 하겠다) 인것 같다. 인간이 인간됨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넘어서서 인간이 인간됨에 함께 동정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런 주제들을 많이 본다. 이제는 악당 역할을 하는 캐릭터도 그 악당의 힘든 상처들을 영화속에서 아름답게 그려주기(그러니까 원래는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어느날...)도하고 도덕적이지 않은 행동들도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라는 그림안에서 잘 포장되어 영화들이 나온다. 인간의 나약하고 연약한 모습들이 영화에서 솔직하고 아름답게 비취지면 일단 선과 악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되고, 더 나아가서 영화 속에 아주 보수적이고 편협한 캐릭터가 한명 존재함으로 인해 더 극적으로 묘사되는 Formula 는 흔히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 모두 연약함을 지니고 살고 있다. 노력해도 잘 변하지 않는 모습들, 약점들, 죄된 모습들. 적어도 나같은 경우에는 이런 답답함을 가지고 있다가 그런 연약함에 ‘아름답다’ 혹은 ‘괜찮다, 그것이 인간이다’ 라고 마음을 울려주는 대사를 들으면 그 대사가 몇 주는 머리속에 맴돌고 솔직히 그게 그렇게 마음에 힘이 될수가 없다. 최근 그런 경험을 또 한번하면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복음은 왜 이런 영화 대사 만큼의 힘이 내 삶에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휴머니즘이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말씀은 차갑게 나에게 절대적인 완성을 요구하는가? 넘어지면 일어나서 빨리 따라와 라고 말하며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가? 그렇지 않다. 말씀은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이 인간됨에 한표를 던져주고 동정해주고 같이 아퍼해주는 휴머니즘 영화 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알고 있는 은혜는 왜 재판받는 죄인 정도에서 밖에 이해되지 않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이 땅에 찾아오셔서 인류를 이해하며 같이 살아가신 예수님 그리고 그가 보여주신 사랑의 행동들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 까닭에 그런 것 같다. 내가 아는 복음은 정말 정말 세상을 뒤집어 엎을 만한 소식인가. 감동의 정도로 기준을 삼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말씀을 읽을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만큼 리얼했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전해줄 수 있었으면 ...
레저 신앙
Sunday, May 31, 2009 11:08:00 PM PDT
신앙을 한가지의 Leisure 로 삼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예전에 어떤 분이 나에게 그런 모습에 대해 충고를 해준적이 있는데 이제 더 분명해 지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 이나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나에게 기도나 말씀 묵상이 접목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즐거움'에 가깝다. 한가한 시간에 책을 읽듯 말씀을 읽기도하고 그러는 것이 어떻게 보면 경건해 보이긴 하나, 자세히 분해해 보면 나는 말씀을 '내가 즐기고 싶을 때' 찾는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나에겐 요가 정도인가.

물론 말씀이 내 삶에 비추었을때 그것에서 오는 기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마음 내킬때만 케주얼하게 찾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 내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 있었을까 고민해 본다.
지금
Tuesday, May 26, 2009 11:37:17 AM PDT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의 슬픔이 가라앉기도 전에 벌써 예상되던 이 올라오고 있다. 그들이 어떤 논리나 성경적인 근거로 정당화 할 지라도 지금 이 시간에 이런 글이 올라오는 것은 참 마음 아픈 일인 것 같다.
나눔고딕
Friday, May 22, 2009 06:45:12 PM PDT
나눔고딕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폰트는 돋움체인데, 최근 친구의 소개로 버금가는 폰트를 알게되었다. '나눔고딕' 체는 네이버에서 자체 제작한 글꼴인데 2008년 한글날을 기념해서 만들었고 무료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 주고 있다. 타이프를 계속 써내려가도 글자의 배치와 받침 하나하나 정성 안들여진 곳이 없는 것 같다. 오래동안 같이 할 폰트를 만나는 건 참 기쁜일이다.
잘 얘기하지 않는 고난
Thursday, May 21, 2009 10:33:50 PM PDT
이 세상에서 겪게되는 고난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믿는 사람들 사이 (적어도 내 주위)에서 '고난'에 대해서 나눌 때 많이 얘기하게 되는 종류는 '이 세상 가치를 따라가지 않음' 에서 오는 고난 혹은 작은 죽음들인 것 같다. 하나님 나라 가치를 타락한 이 땅에서 살아내면서 가지게 되는 고난와 그것에 대한 용기에 대한 대화는 언제들어도 멋지다.

하지만 비교적으로 얘기를 조금 덜 하게 되는 고난이 있는데 이것은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로 인해 겪는 고난이다. 일단 자신의 숨겨진 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은혜로 해결' 혹은 '벌받아 마땅함' 이라는 논리에서 단순화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죄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때 한 사람의 반응은 훨씬 더 복잡하다. 죄의 결과에 대해서 부정 하거나 그냥 저주로 받아드릴 때 정말 이상하게도 사람은 죄를 향해 한걸음 더 가까이 (자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는 Anomaly 를 본다.

내가 지은 죄의 결과로 인해 겪는 고난은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는 저주의 현장인가? 피부로 다가오는 죄의 삯을 맞이 할때 '용서해 주셨으니 이제 분명히 일이 잘 풀릴거야' 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치명적인 고난과 고통이 인생에 지속된다면 무어라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불러 일으킨 결과에 대해서도 부활의 희망은 유효한가?

이런 질문에 대해 한마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성경에 나온 몇 인물들의 회개 장면을 보다가 그들은 회개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의 삶이 이 세상에서 더 행복해 질것이라는 기대를 별로 안한 것을 보았다. 즉 그들의 회개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이었으며 하나님이 그들을 통치하는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이었지 짧은 시간 안에 고통을 덜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던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은 살을 도려내는 듯한 결단을 하고 회개를 통해 죄의 결과에 대한 댓가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들어가곤 한다. 그런 결단은 잠시 쓴약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의 범위의 큰 부분을 평생 Cripple 되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결단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힘들었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일컬음 받게 되는 것에 비해 그렇게 큰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통치와 고난이 함께 공존 하는 것은 그들에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점은 고난을 두려워 하는 우리 세대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 주는 것 같다. 회개를 하면 고난이 피해 갈거라는 생각도 많이 하고 고난이 지속되면 하나님이 벌주시는 것이고 저주 안에 버려진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둘다 잘못된 생각이다. 마지막 날에 우리가 완전한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 다면,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 하더라도 즉 그것이 우리의 죄로 인한 결과이더라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그 결과가 나를 평생 따라다니고 이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하여도 그것에 눌리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더 나아가 조심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건 그 고난의 자리가 곧 하나님의 Justice 가 이루어 지고 있음을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그것을 나의 세포 하나 하나로 정면으로 받아드리며 그분의 통치 안에 거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죽음이 이제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이 세상의 가치 때문에 오는 고난이던, 혹은 나의 죄의 결과에서 오는 고난이던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고난에서 눈을 돌려서 하나님의 통치와 진실한 회개에 내 삶을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Kingdom of Heaven
Thursday, May 21, 2009 06:50:58 PM PDT
요즘은 천국이 어떤 모습인지 계속 읽으며 생각하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하늘 나라'로 탈출하는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우주 어딘가 구름 위로 아니면 4차원의 세계에 잘 준비해 놓으신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조하신 만물들을 이 땅에서 회복(Restore/Re-Create)하시고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는 그림이 말씀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과 가까운 것같다.

오늘은 일본 라면을 친구(몇 안되지만)와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천국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는 결론을 서로 내리면서 무릎을 치고 왜 그럴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장난으로 '금으로 지은 집'이 캘리포니아 집보다 불편하고 보기에도 영 아닐것 같다고 그랬고 그 친구는 '좋기야 하겠지만 뭐 나중에 가서 생각하지' 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그림이라면 조금 더 기대할 수 있지 않겠냐 비슷한 얘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자리를 일어서며 지나간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누가 이 '하늘 나라' 환상을 우리에게 불어 넣었길래 모두가 이렇게 우리 현실과 동떨어 진 것으로 천국을 생각하는 걸까 이다. 테레비? 주일학교 교사가? 어떤 전도사님이? 아니면 본능적으로? 너무 궁금하다.
update with a reader's email response:
I think it's our disappointment with current situation of our world that created this fantasized version of heaven. Usually, the easiest way out of trouble is to run away from it and enter a new place. I think with that idea, it's easy and comforting for us to create this happily-ever-after-version of heaven.

Like you have mentioned, Bible draws a picture of restoration instead of escape. But our current world is so bleak that idea of restoration is sometimes unfathomable. I think God felt the same way too when He decided to start all over again and sent the flood. Yet, that wasn't what God wanted. He promised that he'll never just wipe it out and start over. But instead He will restore this broken land.

Idea of restoration seems very daunting and impossible. The fact that God wants to use the Church to restore this world sometimes scares me. Church, which includes myself, is so fragile and weak that escape to heaven sounds more pleasing than work of restoration. But when you read the Bible, one thing stands out: the promise of victory from God. With this promise all the doubt goes away. With this promise, I am able to stand up and be part of His restoration.
—eunmind.net, no copyright, year two-thousand nine. summer.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숨쉼을 기뻐하겠다.
은혜는 오심에 가까워 보인다 -도널드 맥컬로우
안개가 싫지 않은 날
하나님 생각 너무 많이하지 마세요. 하나님 부담스러워 하시겠다. — 오늘한 즐거운 대화 중에서
나는 주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 — 하박국 3장 <BBC Planet Earth> 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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